2023. 8. 21. 15:04

소명 “인성 교육에 돈 많이 들였는데” 딸 소유미에 투자 실패
- 2023. 6. 7

가수 소명이 딸 소유미에 대해 말했다.

6월 6일 방송된 TV조선 '화요일은 밤이 좋아(이하 화밤좋아)'는 뽕짝쿵짝 패밀리 특집으로 진행됐다.


이날 장민호는 소명에게 "소유미 씨가 화밤 나올 때마다 허당 매력을 자랑하는데 어떠냐"고 물었답니다.

소명은 "정말 이해가 안 된다. 많은 돈을 들여서 교육을 시켰는데. 인성 교육도 정말 많이 했는데 왜 허당이 그렇게 나오는 거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붐이 "아버님으로서 맹한 매력을 빼고 완벽한 우리 딸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거죠?"라고 묻자 부자는 똑같이 맹한 매력을 자랑해 웃음을 줬다. 스튜디오에는 "아버님도 맹하게 있었어요" "아빠 닮은 거였네!"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한편 TV조선 '미스터트롯2'에서 아쉽게 탈락한 재하는 한 방송에서 "엄마의 카드값 1천만원을 갚아드렸다"라고 밝힌 바 있답니다.

복면가왕 와인=소유미 "父 소명, 친오빠 소유찬..트롯 집안"[결정적장면]
- 2020. 6. 22

와인 정체가 트로트 가수 소유미로 밝혀졌다.

6월 21일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에서는 130대 가왕에 도전하는 참가자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MC 김성주는 "다들 아시다시피 소유미 씨 아버지가 곡 '빠이빠이야'를 부른 소명 씨다. 친오빠도 트로트 가수 소유찬으로 활동 중"이라고 설명했답니다.

이에 대해 김구라는 "소명 씨하고 좀 아는데 며칠 전 뜬금없이 전화가 왔다"며 "잘 있냐고 묻더니 그냥 끊으셔서 너무 궁금했다. 아마 딸 얘기가 목구멍까지 나왔을 거다. 하지만 부탁 같은 거 안 해도 소유미 씨가 너무 잘해줬다"고 말했다.

이어 소유미는 "사실 가수 집안이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많다"며 "주변에서 아버지를 알기에 조심스럽다. 그런데 오늘 가면 덕분에 오히려 자유롭고 행복했다"고 소감을 밝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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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8. 21. 14:01

"어머님 충격"...김양·하동근, 결혼설에 밝힌 입장
- 2023. 4. 11.

트로트 가수 김양이 동료 가수 하동근과의 결혼설에 '동공지진'을 일으켰다.


김양은 방송인 하지혜와 함께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트로트 팬들을 위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달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트로트 가수를 초대해 인생사를 나누고 노래까지 들려주는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며 인기를 모아왔답니다.

지난달 첫 라이브 방송 게스트로는 하동근이 출연한 가운데 이후 이찬성 진웅 최대성 등이 출연하며 이들의 콘텐츠에 힘을 실었다. 특히 하동근은 TV조선 '미스터트롯2'에서 김용필과의 데스매치 비하인드를 공개하며 친누나인 하지혜와의 '현실 남매 케미'를 선보였다.


3년 만에 어엿한 트로트 가수로 자리잡은 하동근의 모습에 김양과 하지혜는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김양은 "요즘 유튜브에 '김양 하동근'을 검색하면 '김양과 하동근, 결혼 서두른 이유. 팬들은 충격'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뜬다"라는 하동근의 말에 동공지진을 일으켰다. 실제로 하동근이 즉석에서 검색해 보여준 영상을 본 김양은 "너무 웃기다. 동근이 어머님 충격 받으시는 것 아니냐"라고 걱정해 웃음을 자아냈답니다.

두 사람의 근거 없는 결혼설에 하동근은 "가짜 뉴스는 정말 사라져야 하는데, 우리 어머니부터 어르신들은 진짜 많이들 믿으신다"라고 우려를 표한 뒤 "결혼설은 가짜지만 최근 김양 선배님의 소속사와 손을 잡고 공동 매니지먼트를 시작하게 됐다. 김양 선배님과는 정말 한식구 같은 사이"라고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진웅과 최대성은 '양다방'에 동반 출연해 '미스터트롯2' 대디부 비화를 공개했다. '대디부' 팀 미션에서 심신의 '오직 하나뿐인 그대'를 부르다 가사 실수를 해 탈락한 진웅 최대성은 "당시 모든 게 끝장나 버린 느낌이었다"라고 털어놨다. 실제로 최대성은 "진웅 형님이 탈락 후, 바로 무릎을 꿇고 제 바지를 붙잡고 죄송하다며 우셨다. 그게 너무 마음 아팠다"라고 자신의 가사 실수를 자책하는 진웅의 모습을 생생하게 회상해 안타까움을 안겼다. 이에 대해 진웅은 "저희는 모두 가족들까지 왕래하며 친해진 사이라, 그 당시 다른 팀원들의 가족들이 떠올라 더 미안했다"라고 설명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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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5. 26. 02:13

'낙동강변 살인사건' 누명 피해자 가족도 무죄
- 2022. 7. 18

고문조작 수사로 억울하게 가해자 누명을 쓴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피해자의 가족들이 위증죄 누명을 30여년 만에 벗었다. 이들은 경찰의 고문조작으로 범인이 된 피해자들의 알리바이를 제공했지만, 경찰은 오히려 위증교사죄 등으로 구속했답니다.

낙동강변 살인사건은 1990년 1월 4일 낙동강변에서 차를 타고 데이트하던 남녀가 괴한들에게 납치돼 여성은 성*행당한 뒤 살해되고 남성은 상해를 입은 사건이다.


7월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지법 형사3단독 송호철 판사는 낙동강변 살인사건 당시 위증교사 등의 혐의로 징역형을 받은 정숙기, 정대근 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답니다.

이 재판에 앞서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1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최인철(61), 장동익(64)씨는 재심 끝에 지난해 2월 사건 발생 31년 만에 무죄를 받았다.

30여년전 수사를 한 경찰들은 최씨와 장씨에게 고문을 가해 허위 자백을 받아낸 뒤 강도살인 혐의 등으로 기소했답니다.

하지만 1심 재판이 열리던 1992년, 최씨의 처남 정대근 씨는 법정에서 사건 당일 최 씨가 대구의 처가에 있었다고 증언했다.

최씨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사하서는 이 증언을 위증으로 규정하고 처남에 대한 수사를 벌였다. 경찰은 최 씨의 아내 정숙기씨가 동생에게 위증을 부탁한 것으로 결론 내리고 이들을 구속했습니다.

두 사람은 1심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각각 2개월과 1개월씩 옥고를 치렀고, 재판에서 최씨의 처남은 징역 5월에 집행유예 1년, 아내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았다. 이들은 최씨와 장씨 재심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부산지법에 재심을 신청했다.

검찰도 재판부에 낸 구형 의견서에서 "검찰은 지난 30여년간 계속된 피고인들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며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정말로 드린다"며 무죄 의견을 냈답니다.

31년만에 무죄 낙동강변 살인사건.."피해자들에 72억 배상"
- 2022. 9. 28

 부산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몰려 21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지만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72억여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답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3부(부장판사 김동빈)는 28일 낙동강변 살인사건 진범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최인철씨(61)와 장동익씨(64), 이들의 가족 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가 72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법원은 이날 최씨에게 18억여원, 장씨에게 19억여원, 최씨와 장씨 가족들에게 4000만~6억원의 배상급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최씨와 장씨는 1990년 부산 북구 엄궁동 낙동강변 도로에서 발생한 여성 성*행 살인사건 진범으로 몰렸다. 낙동강변 살인사건은 차에서 데이트를 하던 남녀를 괴한들이 습격해 여성을 성*행한 뒤 살해하고 남성은 격투 끝에 도망친 사건이랍니다.

범인을 검거하지 못한 경찰은 사건 1년 뒤인 1991년 11월 하단동 을숙도 공터에서 무면허 운전교습 중 경찰을 사칭한 사람에게 돈을 뺏겼다는 신고를 받고 최씨를 임의동행해 경찰서로 데려갔고, 현장에 함께 있던 장씨도 연행했다.

한편, 경찰은 조사 과정에서 두 사람이 살인을 실토했다고 설명했지만 이들은 검찰 조사에서 경찰의 가혹행위로 허위 자백했다고 주장했답니다.

검찰과 법원이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무기징역이 확정됐고, 이들은 21년간 옥살이를 하다가 2013년 모범수로 특별감형돼 석방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2심과 3심에서 두 사람의 변호를 맡기도 했답니다.

최씨와 장씨는 박준영 변호사와 함께 2017년 5월 재심을 신청했고 부산고법은 2020년 1월 재심 개시를 결정, 지난해 2월 무죄를 선고했다. 경찰, 검찰, 법원은 선고 전후로 이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했고 검찰이 상고를 포기하며 판결이 확정됐답니다.

Posted by burupdant
2023. 4. 25. 22:10

- 프로필 이력 경력

생년월일 나이 생일
1991년 10월 29일 (31세)

고향 출생지
대구광역시

학력
동덕여자대학교 (방송연예학 · 국어국문학 / 학사)
한양대학교 상담심리대학원 (성인상담학 / 석사과정 재학)

소속사
MBC 아이콘 아나운서국 (2017 ~ 현재)

주요 경력
현대HCN 서초방송 아나운서
(2015 ~ 2016)

연합뉴스TV 아나운서
(2016 ~ 2017)

MBC 아나운서

MBC 박지민 아나운서가 미숙한 진행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박지민 아나운서는 25일 서울 영등포구 소재 한 호텔에서 열린 ‘2023 웨이브 콘텐츠 라인업 설명회’ 행사 진행을 맡았답니다.


박 아나운서도 출연한 웨이브 오리지널 예능 ‘피의 게임2’ 간담회가 먼저 시작했고, MBC 현정완 PD와 출연진이 등장해 이야기를 나눴답니다.

한 취재진이 출연자 파이에게 앞선 웹예능 ‘머니게임’으로 논란을 빚은것에 대해 묻자, 박 아나운서는 “대답 안하셔도 좋습니다”라며 자의적 판단으로 질문을 사전 차단했습니다.

행사가 끝난 뒤 박 아나운서는 “오늘 진행이 처음이었다. 친했던 분들을 만나 너무 흥분했던 것 같다. 그 부분에서 미숙한 모습을 보인 것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답니다.

이어 “ ‘피의 게임 시즌1’에서 악플을 많이 받다 보니 흥분했던 것 같다. 미숙했던 점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던 것입니다.

'피의 게임 시즌2' 박지민·현성주·유리사·이진형, 지능캐 총출동
- 2023. 4. 12

웨이브 오리지널 '피의 게임 시즌 2'가 두뇌 최강자 박지민, 현성주, 유리사, 이진형의 캐릭터 포스터를 공개했습니다.

오는 28일(금) 첫 공개될 웨이브 오리지널 '피의 게임 시즌2'(연출 현정완, 이하 '피의 게임 2')는 두뇌, 피지컬 최강자들이 사냥할 것인가, 사냥당할 것인가를 두고 벌이는 극한의 생존 서바이벌 예능이다.


서바이벌 프로그램 우승자부터 수능 만점자, 세계포커대회 우승자, IQ 156의 상위 1% 멘사 회원 등 두뇌와 피지컬, 생존 본능까지 꽉 채운 플레이어들이 총 상금 3억을 향해 피 튀기는 경쟁을 펼칠 예정이다. 마지막까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느 때보다 치밀한 계획이 요구되는 가운데 공개된 캐릭터 포스터 속에는 '피의 게임 2'의 지능 캐릭터 박지민, 현성주, 유리사, 이진형의 전략이 담겨 있답니다.

'피의 게임 1'에서 속고 속이는 심리전으로 세미파이널까지 진출했던 아나운서 박지민은 게임 속 경우의 수를 생각하듯 눈을 번뜩이고 있다. '배신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답게 "끊임없는 배신, 그게 내 전략"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내 흥미를 돋운다.

세계 포커 챔피언쉽 우승에 빛나는 포커 플레이어 현성주는 혼자만의 생각에 잠긴 채 "게임을 꼭 정석대로 풀 필요 없잖아"라며 예상을 뛰어넘는 자신만의 플레이를 선언한다. 특히 포스터 속에서도 돋보이는 현성주의 포커페이스는 방심한 경쟁자들의 허를 찌른답니다.

"난 게임을 잘해. 그래서 정치는 안해"라던 IQ 156의 상위 1% 멘사 회원 모델 유리사는 심리전보다는 게임에 강세를 보이며 생존 경쟁의 새로운 변수로 자리매김한다. 타고난 지능을 발휘해 게임에서 이겨 살아남는다면 탈락을 피하기 위한 정치도 필요 없기 때문이랍니다.

'피의 게임 2'의 유일한 일반인 플레이어 이진형은 훈훈한 외모에 서울대 의대에 재학 중인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다. "난 수능 만점이고 머리 쓰는 건 내 전문"이라는 말대로 탄탄한 스펙을 갖춘 이진형이 최강자들 사이에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답니다.

게임은 물론 심리전에도 능한 전략가들은 뛰어난 지략과 전술로 끊임없는 반전을 만드는 한편, 예리한 공격으로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을 선사한다. 이에 플레이어들의 사투 역시 더욱 팽팽하게 흘러갈 전망이다. 과연 박지민, 현성주, 유리사, 이진형 중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최강의 지성을 입증할 주인공은 누가 될지 호기심이 쏠리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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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4. 25. 21:56

가수 임창정이 주가 조작과 관련 본인도 피해자라고 주장했습니다.

2023년 4월 25일 JTBC 뉴스룸에서는 가수 임창정이 주가 조작 일당에 수십억을 투자했으며, 임창정 본인은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단독 보도했단비다.

보도에 따르면 임창정은 주가 조작 일당 수십억 원을 투자했고 따로 이들과 해외 골프장에도 투자했다. 임창정은 본인도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임창정이 주가 조작 세력들에게 돈을 맡긴 건 올해 초. 임창정은 자신의 연예 기획사 지분 일부를 50억 원에 파는 대신, 그 중 30억 원을 이들에게 재투자하기로 했다. 이에 15억 원은 자신의 증권사 계정에 15억 원은 부인의 계정에 넣었다는 것입니다.


임창정은 "어떤 종목인지 모르지만, '그래프만 보게 되니까 이익이 좋고 수익이 얼마만큼 났다고 하니 되게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15억, 15억을 개인 계좌로 만들었던 상황이다"라고 전했다. 자신과 부인의 신분증을 맡겨 해당 세력들이 임씨 부부 명의로 대리 투자할 수 있게 했답니다. 

임창정은 "당연히 '그 친구들이 하는 팀들이 하는 룰인가 보다' 했다. 저는 주식을 모르니 그렇게 다 해줬다"라며 30억 원이 한 달 반 만에 58억 원이 됐지만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는 못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돈 많으신 회장님들도 개인 돈을 불려주고 막 그런다고 (하니까)"라고 말했다. 임창정에 따르면 이들은 임 씨가 넣은 30억 원으로 신용매수까지 해 모두 84억 원어치 주식을 샀답니다.

임창정은 "저는 30억 원을 샀던 상황이다. 근데 84억을 샀던 거다. 저는 몰랐다"라며 어제(24일)와 오늘(25일) 폭락으로 오히려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둘 다 반 토막이 나 있는 거다. '뭔 일인가'.정말로 그게 어제인 거다. 이게 '누군가에게 당했다'라는 표현이다"라고 이야기했답니다.


하지만 임창정은 이른바 작전 세력들이 운영하는 방송 채널에 출연했고, 이들이 인수한 해외 골프장에도 함께 투자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임창정은 "거기(골프장) 서 겸사겸사 공연도 하고 이렇게 된 거다. 형도 가서 공연을 어떻게 할 건지, 거기에 있는 회원들을 어떻게 하건지, 형도 가서 봐야 될 것 아니냐"라고 말했답니다.

임창정은 자신도 피해자라며 수사나 조사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밝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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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4. 21. 18:17

서태지·이지아 비밀결혼→55억 이혼소송
- 2023. 4. 21

12년 전인 2011년 4월 21일. 데뷔 후 줄곧 신비주의를 고수해오던 가수 서태지(본명 정현철)와 배우 이지아(본명 김지아)가 이혼 소송 중인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결혼 사실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두 사람의 이혼 소식은 대중들에 큰 충격을 안겼다. 특히 그간 사생활 노출 없이 신비주의로 활동해온 서태지와 이지아였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이지아, 서태지에 '55억원' 위자료·재산분할 요구 소송하다!

이날 스포츠서울은 서태지와 이지아가 법적으로 부부였으며 이혼 소송을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이지아는 2011년 1월 서태지를 상대로 5억원의 위자료와 50억원의 재산분할을 요구하는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양측은 법정대리인을 통해 그해 3월 14일, 4월 18일 두 차례 공판을 마친 상태였다.

당시 두 사람의 이혼 소송 사실은 보도 3일 전인 4월 18일 서울가정법원에서 진행된 2차 공판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알려지게 됐다. 서태지 측 변호사는 4명, 이지아 측 변호사로는 3명이 배당된 대형 소송으로 알려졌습니다.

이같은 사실이 보도된 직후 당시 이지아의 소속사였던 키이스트 측은 "전혀 몰랐다. 이지아와 연락 두절됐다"며 당혹감을 드러냈다. 서태지의 소속사와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로 활동했던 양현석 역시 결혼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지아, 서태지와 美서 결혼 후 3년 만에 별거…끝내 이혼

키이스트 측은 22일 자정에야 이지아와 서태지의 관계에 대한 입장을 내놨다.

키이스트에 따르면 이지아는 미국 유학을 떠났던 1993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한인 공연 중 지인의 소개로 서태지를 처음 만났습니다.

미국에 머물던 이지아는 연예 활동 등으로 한국에서 지내던 서태지와 서로 편지와 전화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서태지가 1996년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후 이지아에게 언어 및 현지 적응 도움을 받으면서 두 사람은 더욱 가까워졌다.

그리고 1997년 10월 12일, 당시 26세 서태지와 20세 이지아는 미국에서 둘만의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은 애틀랜타, 애리조나주를 오가며 결혼 생활을 했답니다.

그러나 결혼 2년 7개월 만에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금이 갔다. 2000년 6월부터 두 사람은 별거를 시작했고, 서태지는 가수 컴백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갔다.

혼자 지내던 이지아는 2006년 단독으로 이혼 신청서를 제출했고, 2009년 이혼 효력이 발효됐다. 이혼 사유는 평범하지 않은 서태지의 직업과 생활 방식, 성격 차이 때문이었다.

55억원 소송으로 알려진 비밀 결혼…이혼 시점 '쟁점'

이지아가 서태지를 상대로 55억원 상당의 위자료 및 재산분할 청구 소송을 제기하고 나서야 두 사람의 결혼과 이혼 소식이 세상에 알려졌답니다.

두 사람의 결혼 및 이혼 소식이 뒤늦게 알려진 가운데, 이혼 시점이 쟁점이 됐다. 이혼 후 2년 이내에 재산 분할 청구권을 행사해야만 재산을 분할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양측은 이혼 시점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내놨다. 서태지 측은" 2006년 1월 이혼 요청이 있었고, 같은 해 6월 이지아가 단독으로 미국 법정의 이혼 판결을 받았다"며 소멸 시효가 지났다고 주장했으나 이지아 측은 "2006년 이혼 신청서를 제출해 2009년에야 이혼 효력이 발표됐다"고 맞섰답니다.

이지아 측은 "원만한 관계 정리를 원했지만 서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고, 재산분할청구소송의 소멸 시효 기간이 다 돼 더 이상 협의가 힘들 것으로 판단, 소를 제기했다"고 주장했다.

10일 만에 입 연 서태지 "평범한 일상 보호받고 싶었다"

서태지는 사건이 터진 지 10일째 되는 날인 4월 30일 오후가 돼서야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짧은 결혼생활 탓에 팬들에게 알릴 수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서태지는 "은퇴 이후 힘겹게 얻은 최소한의 보금자리와 처음으로 누려보는 평범한 일상을 보호받고 싶었다. 그리고 언젠가 시간이 지나 안정을 찾고 제 인생도 확신이 생길 때 가장 먼저 나의 팬들에게 사실을 알리고 축복도 받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불행히도 그런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고 2000년 이후 상대방과 헤어지는 수순을 밟으며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가수 서태지로 활동을 시작했다"고 했답니다.

그러면서 "그 후로는 이미 헤어져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상대방을 세상에 발표한다는 것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기에 그렇게 모든 일들은 이제 내 마음에만 담아두어야 할 비밀이 됐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된 심정을 부디 이해해 주기 바란다"고 팬들에게 이해를 구했답니다.

이지아 소송 취하했지만…서태지 측 소송 강행…3개월 만에 '합의'

서태지가 입을 연 날, 이지아 측은 서태지를 상대로 한 위자료 및 재산분할 청구 소송을 취하했다고 밝혔다. 소송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생활 노출에 대한 부담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서태지 측은 이지아 측의 취하에도 불구하고 소송을 이어가기로 결정해 다시 주목받았다. 소송을 당한 쪽이 소송을 제기한 쪽의 소 취하에 부동의 의사를 밝힌 것은 보기 드문 사례이기 때문이랍니다.

2011년 5월 서태지 측은 "본 사건은 향후 재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있고, 본 사건의 사실 확인 또한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부동의서 제출 이유를 밝혔다.

서태지의 이같은 선택은 당시 서태지가 이지아에게 10억원 가량의 합의금을 줬다는 등의 악성 루머가 퍼졌던 만큼 각종 의혹을 명명백백하게 증명할 의도로 해석되기도 했다.

이후 2011년 7월 29일 서태지와 이지아는 합의를 통해 이혼 소송이 마무리됐음을 알리며, 조정 내용 전문을 공개했답니다.

이에 따르면 두 사람은 향후 혼인 관계 및 그로부터 파생된 관계에 대해 일체의 소송이나 비방, 금전거래, 출판, 음반 발매 등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혼과 관련해 양측 간 어떤 명목의 금원 또는 이익을 제공받은 바 없으며 향후 지급받기로 약속한 바도 없음을 확인했습니다.

Posted by burupdant
2023. 4. 21. 17:13

이혜성, 김락근 CEO와 열애설 강력 부인 "친한 지인, 손 안 잡았다
- 2023-04-21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이혜성이 패션 CEO 김락근과의 열애설을 부인했습니다.

4월 21일 오후에 한 언론은 이혜성과 패션CEO 김락근과의 열애설을 보도하면서 "이혜성이 최근 일본 도쿄에서 진행된 한 브랜드 글로벌 파티에서 김락근 씨와 연인 같이 다정한 모습을 보였으며 두 사람이 손잡은 모습을 봤다는 목격자도 많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혜성 측은 열애설을 부인했던 상황이다"고 보도했답니다.


에이 이혜성 소속사 SM C&C 관계자는 "손잡은 적이 없다"고 부인하며 "열애설은 사실무근"이라고 다시 한번 부인했다. 이혜성과 김락근 대표의 관계에 대해서는 "친한 지인 사이"라고 설명했답니다.

지난 7일부터 일본 도쿄에서는 김락근 CEO와가 협업하는 무신사의 팝업스토어가 열렸고, 이혜성도 비슷한 시기 일본을 방문해 유튜브를 촬영하면서 만난 것으로 보인답니다.

한편 이혜성은 서울대를 졸업한 KBS 43기 공채 아나운서 출신으로 2020년 퇴사 후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현재 tvN '벌거벗은 세계사'에 출연 중이며, 개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팬들과 소통하고 있답니다.

BTS가 입은 인스턴트펑크..셀럽 마케팅으로 '대박'
- 2021. 1. 10

K패션 뉴리더 (4) 김락근 인스턴트펑크 대표

신생 패션 브랜드 인스턴트펑크엔 이런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인스턴트펑크는 2015년 제시카, 이하늬, 한예슬 등의 스타일리스트였던 김지혜 인스턴트펑크 이사(디자이너)가 처음 선보인 브랜드다. 지난해 코로나19 확산으로 패션시장이 위기에 몰렸지만 인스턴트펑크 매출은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이 회사의 성장 전략 키워드는 속도다. 발 빠르게 트렌드를 반영한 디자인의 옷으로 승부하고 있답니다.


인스턴트펑크가 창업 당시 선보인 대표제품은 200만원 안팎의 롱무스탕이었다. 김 이사는 스타일리스트의 인맥을 활용해 이 제품을 연예인들에게 입혔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신생 브랜드였지만 온라인에서 200만원 넘는 롱무스탕이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2018년 인스턴트펑크의 성장 가능성을 눈여겨본 패션 전문 투자사 슈퍼홀릭이 100억원 이상 투자했다. 인스턴트펑크는 이후 매출이 큰 폭으로 늘었다. 2017년 8억원이던 매출은 2018년 24억원, 2019년 44억원을 기록했고 지난해엔 85억원으로 뛰었다. 매년 100% 안팎의 성장률이다. 올해는 두 배 이상인 200억원을 목표로 잡고 있답니다.

인스턴트펑크는 지난해 BTS(방탄소년단)가 이 회사 제품인 맨투맨 티셔츠를 입고 나오면서 대박을 쳤다. 작년 봄에 내놨던 맨투맨 티셔츠(봄 버전)는 1만6000장, 가을 버전은 2만8000장이 팔렸다.

패션 플랫폼 무신사와 W컨셉 등을 통한 판매 전략도 주효했다. 지난해 무신사를 통한 인스턴트펑크 매출은 전년 대비 다섯 배 이상 늘었다. W컨셉에서는 매출 상위 10위 안에 든답니다.

인스턴트펑크의 경영은 2018년 슈퍼홀릭 투자 이후 김락근 대표가 맡고 있다. 창업자인 김 이사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디자인에만 전념하고 있다. 김 대표는 광고회사 패션매거진 등을 거친 브랜드 컨설팅 전문가입니다.

김 대표는 올해 맨투맨 티셔츠와 청바지 등 제품 종류 수를 늘리고, 무신사를 통한 마케팅도 강화하는 등 남성 제품 비중도 확대할 계획이다. 해외 판매처도 미국 일본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중국 등에서 더 넓혀간다는 방침이랍니다.

Posted by burupdant
2023. 3. 29. 01:21

- 프로필 이력 경력

이름 본명은?
조광현 (曺廣鉉)

출생 나이 생일
1935년 3월 30일 (87세)

고향 출생지
경기도 김포군

사망일
2023년 3월 28일 (향년 87세)

학력
경복중학교 (졸업)
경복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 / 학사)

과거 경력
1962년 ~ 1995년 영진치과의원 운영
병역 군대 사항
군의관 전역

수상
1985년 제7회 치과의료문화상
1994년 제2회 서울치과의사회 공로대상
2008년 네이버 파워지식IN상

수호신
별명
지식인 할아버지, 수호신 할아버지, 핫바할배

2023년 3월 28일을 일기로 안타깝게도 운명을 달리하셨습니다. 아래는 과거 언론보도내용입니다.

매일 아내 간병 뒤 '지식인' 답변..83살 '네이버 스타' 조광현 할아버지
- 2018. 12. 23

인터넷을 할 줄 아는 한국인이라면 궁금한 게 있을 때마다 이곳을 꼭 한번은 기웃거려보았으리라. 인간이 물어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질문들이 집적되어 있는 곳. 초등학생의 질문부터 노인의 질문까지, 어렵고 복잡한 질문부터 단순하고 한심한 질문까지, 은밀하고 부끄러운 고백 같은 질문부터 사회 윤리에 부적절한 질문까지 품는 곳. 2002년 처음 시작된 네이버 ‘지식인(iN)’에는 지난 15일 현재 3억950만개가 넘는 답변이 쌓여 있습니다.


나 역시 대학생 때 그곳을 기웃거린 적이 있었다. ‘눈물 참는 법’이라고 검색했던 것이 기억난다. 바보 같은 질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지식인’이란 원래 그런 곳 아니던가. 비법들은 대체로 싱거웠다. 하늘을 쳐다봐라, 눈을 빠르게 깜빡여라, 눈물을 왜 참느냐 그것은 아름다운 영혼의 물방울이다…. 그러나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게 남아 있는 것은 ‘눈물’이라는 키워드에 함께 걸린 또 다른 누군가의 글 때문이었다.

한편 정확한 문구는 기억나지 않지만 요지는 이랬다. ‘나는 가수 보아와 동갑인 중학생인데, 왜 나는 모든 것이 그녀와 다른 것인지, 왜 나는 그녀처럼 될 수 없는지, 그 질투와 절망감이 극심해서 밤마다 많이 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아가 수년 동안 받았을 혹독한 트레이닝에 대해서까지 그녀는 잘 알지 못했던 것 같지만, 그럼에도 십대에 슈퍼스타가 된 가수가 같은 또래의 학생들에게 안겨주었을 박탈감에 대해서 나는 이때 처음으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 애는 이 글도 울면서 썼겠지.’ 나는 울보의 촉으로 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음이 아팠다. 말하자면 ‘지식인’은 이런 기억들까지 덤으로 안겨주는 곳이었답니다.

그 기상천외의 문답의 현장에 2012년 크리스마스이브, 놀라울 만큼 깜찍한 답변이 등장했다.

문 산타 할아버지 나이는 몇살인가요?

답 아빠 나이와 동갑입니다.

곧장 이 답변자는 4천개가 넘는 공감을 얻으며 지식인의 스타가 된다. ‘녹야’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며 ‘지식인 할아버지’로 불리는 올해 83살의 조광현 할아버지는 그러나 반짝 스타가 아니었다. 그의 첫 지식인 답변은 2007년 9월(‘공개설정’한 답변의 경우)로 기록되어 있다. 할아버지의 답변 수는 지난 15일 기준으로 3만7978개에 이른다. ‘하수-평민-시민-초수-중수-고수-영웅-지존-초인-식물신-바람신-물신-달신-별신-태양신-은하신-우주신-수호신-절대신’에 이르는 길고 지난한 지식인 등급 가운데 그는 두번째로 높은 ‘수호신’이다. 2018년 10월 기준으로 절대신은 32명뿐이다. 아무튼 지식인 안에서 할아버지는 진정 ‘넘사벽’인 것이랍니다.

지식인의 ‘넘사벽’

“독거노인한테 무엇이 궁금해서 오셨나?”

현관(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자택) 앞에서 꾸벅 인사를 하고 엉거주춤 몸을 숙인 채 운동화 끈을 낑낑대며 풀고 있는 나에게 조광현 할아버지가 쑥스러운 듯 물었답니다.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었나, 영 불안하구먼.”

―잘못이라니요, 선생님. 건강은 괜찮으세요?

대단한 일을 해야 인터뷰라는 것도 하는 걸 텐데, 자신은 특별한 일을 한 게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할아버지에게 일단 식사는 잘 하시는지부터 물었다.

“요즘 혼자 밥해 먹는다니까 팬들이 반찬을 보내줘요. 주전부리, 간식도 보내주고. 그게 많은 도움이 돼요.”

―그래요? 어떤 걸 보내주나요?

“이것저것 많은데 주로 콩장이나 그런 거…. 잘 상하지 않을 만한 것들로.”

할아버지는 부엌 쪽으로 나를 안내했다. 식탁 위에 어지럽게 널린 약 봉지들 사이에 과자 봉지 몇개가 섞여 있었다. 채소로 만든 꽤 비싸 보이는 과자였는데, 그것도 팬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몸에 좋은 과자 같아요. 팬분이 선생님 건강 생각해서 보내신 건가 봐요.

“그래서 그런지 맛이 없어요.(웃음)”

―음식은 어떻게 해 드세요?

“아무거나 주워 먹지요. ‘내 입은 쓰레기통이다’ 생각하면서. 요리는 뭐 잡탕, 아무거나 쉬어버리기 직전 것들을 끌어모아서 밥이랑 같이 끓여 먹어요.”

거실 한편에 아담한 감사패 두개가 빛나고 있었다. 네이버로부터 받은 감사패들(2008년 파워 지식인 선정 등)이었다. 평소 지식인 활동을 어떻게 하시는지 묻자 할아버지는 안방 문을 열어 보였답니다.

“여기서 합니다.”

침대와 마주한 컴퓨터 책상 위에 직접 수건으로 제작한 손목보호대와 두대의 돋보기가 놓여 있었다.


―침대 바로 옆에 컴퓨터가 있네요.

“그래야 자다가도 일어나서 질문들을 들여다보고 하지요.”

컴퓨터 바탕화면에는 손바닥 크기만한 아이콘들이 띄워져 있었다. 할아버지는 익숙하게 인터넷 창을 연 뒤 네이버 지식인에 접속했다. 시력과는 무관하게 그저 오랜 시간 손이 익혀온 습관처럼 보였다. 할아버지의 눈은 시력이 크게 손상돼 있었다. 그는 글씨들을 크기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읽어냈다. 큰 글씨는 안경을 조금씩 손으로 조정하며 파악했고, 작은 글씨는 양손에 든 돋보기 두개를 겹쳐 보며 확인했다.

―눈이 많이 안 좋으시다고 들었어요.

“이제는 돋보기 두개로 보지 않으면 잘 못 봐. 길을 걸을 때도 안 보이니까 돌이나 턱에 걸려 넘어질 뻔한 적도 많아요. 그래서 이제는 발을 높게 들면서 걷지. (시범을 보여주며) 이렇게 걸으면 턱에 잘 안 걸려요. 그래도 지금 요조씨 얼굴은 잘 보이던 것입니다.(웃음)”

―하루에 보통 답변을 몇개나 다세요?

“많은 날도 있고 적은 날도 있고. 나도 안 세어봤으니 모르지.”

그래서 내가 세어보았다.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평균을 내보니 보통 하루에 10개꼴이었다. 직접 질문을 고르고 ‘독수리 타법’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쳐넣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답변 10개를 적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 했답니다.

―혹시 지식인이나 선생님 블로그 말고 또 즐겨 찾으시는 사이트가 있나요?

“없어요. 나는 그 두개밖에 안 해.”

―아이디로 ‘녹야’(綠野)를 쓰시는데, 녹색들판이라… 선생님 호인가요? 지식인 사이트 색깔과 정말 잘 어울려요.

“그렇습니다, 제 호예요. 중학생 때 내가 지었습니다. 넓고 푸른 들판, 좋잖아요? 그렇게 살자는 마음에 지은 거지요.”

―중학생 때 벌써 호를 지으셨군요. 혹시 어릴 때부터 아는 것이 많은 아이셨어요?

“나름 머리가 좋았어요. 세살 때 엄마 등에 업혀서 딱 한번 외갓집에 다녀왔는데도 나중에 그 위치를 기억했어요. 한자를 좋아해서 국민학교 입학 전에 이미 4천자나 외우고 있었고요.”

―4천자라니 믿을 수가 없어요.

“국민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하고 한자 대결을 했는데도 이겼지. 그 정도로 한자에는 자신이 있었어요. 그런데 중학교 때 선생 실수로 100점인 시험 점수가 20점이 된 적이 있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억울해.”

할아버지의 고향은 경기도 김포의 “완전 시골”이었다. 서울 마포까지 통통배가 다니던 시절, 그 배를 타고 나가 경복중학교(서울시 종로구) 입학시험을 봤다. “경쟁률이 셌지만 턱 붙었”다.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그는 치과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의사 되는 게 원래 꿈이셨나요?

“나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빽’ 없으면 취직도 못 했어요. 병원 개업하면 밥이야 굶겠나 싶어서 서울대 치과대학에 들어갔어요. 중앙대 국문과도 2차로 봤는데 거기도 붙었고. 친구들보고 둘 중 어디 갈까 했더니 서울대가 낫다 하데요. 뭐가 낫느냐 물었더니 등록금이 싸다는 거예요. 그래서 치과대학이 뭐 하는 데인지도 잘 모르고 갔어요. 그런데 공부하다 보니까 내 성격에 딱 맞아요.”라고 전했답니다.

할아버지는 소뿔로 치아 모형을 만들던 실습 시간을 어제 일처럼 기억했다. 남들이 하나 만들 때 자신은 일곱개를 만들어 학우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했다. “모형 그거 하나 받으려고 친구들이 나한테 아부를 많이 했다”며 할아버지는 웃었다.

―병원 운영은 잘하셨어요?

“내가 고집이 세서 돈을 잘 못 벌었습니다. 환자도 가려서 받고. 환자 태도가 신통치 않으면 ‘네 돈 아니어도 산다’는 기분으로 조금이라도 예의가 없으면 진료를 안 했어요. ‘장사’가 잘 안되니까 이사를 많이 다녔는데 병원에는 늘 파리만 날렸어요. 간호사 월급 줄 돈도 없어서 나 혼자 일할 때가 많았어요. 청소도 내가 직접 하고. 그래도 아내가 돈을 벌어서 예순한살 때 치과를 아예 그만두었지요.”

―아내께서요? 어떻게요?

“우리 마누라가 붓글씨를 잘 쓰니까. 여기저기 가르치면서 돈을 벌었지요. 유명한 사람도 가르치고 그랬다고.”

할아버지는 거실을 천천히 돌면서 아내 자랑을 했다. 거실 벽에는 아내가 직접 썼다는 고운 서예 액자들이 걸려 있었다. 할아버지를 인터뷰한 방은 아내가 붓글씨를 쓰고 가르치는 작업실이기도 했다. 방을 가득 채운 널찍한 나무책상은 오랜 세월 사람의 손을 타서 반들반들했고 벽에는 다양한 크기의 붓이 가지런하게 세워져 있었다. 먹이니 벼루니 하는 도구도 사용하는 주인 없이 방치됐다기보다 여전히 생생한 기운을 뿜었다.

―아내는 어떻게 만나셨어요?

“25살 군의관 시절에 중매쟁이 소개로 얼굴도 보지 않고 약혼했습니다. 결혼은 6개월 뒤에 했고요.”

―어떻게 얼굴도 안 보고….

“내가 7남매 중 장남이에요. 그냥 부모가 신부 정해놓고 ‘너 결혼해라’ 하면 ‘네’ 하고 하던 시절이었잖아요. 부모가 좋다면 볼 것도 없다, 그런 식이었으니까. 아내가 서예를 잘해서 거기에 반했지요. 결국 나중에 국전에서 대상까지 탔어요.”

집안 곳곳에 할아버지의 아내, ‘늘샘’ 권오실씨의 단정한 글씨들이 걸려 있었다. 그의 글씨는 서예에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아주 아름다웠다. 그는 어떤 작품을 쓰면서는 사흘 밤을 지새웠고, 한 자라도 마음에 안 들면 썼던 것을 모두 찢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만큼 서예에 열정적이었다고 한다. 아내의 서예를 곁에서 든든히 지켜주던 할아버지는 이제 매일 요양원으로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내를 만나러 간다.

“아침 먹고 나면 바로 요양원으로 마누라 면회 가서 돌봐주죠. 아내는 이제 내가 누군지도 몰라요. 얘기도 잘 못하고요. 그냥 말이나 잊어먹지 않게 몇마디 주고받고 이불이나 잘 덮어줘요. 내가 치과의사면서도 쓸데없이 고집을 부리느라 돈을 못 벌어올 때 아내가 나를 도왔잖아요. 이제는 내가 아내를 끝까지 책임지고 보살펴야지요.”

―그럼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세요?

“새벽 네다섯시면 눈이 떠져요. 아침에 아내 보러 갔다가 점심때 집에 와서 밥 차려 먹고 오후 시간 내내 이 방에서 보내면 하루가 다 가요.”

―지식인 답변은 하루 몇시간이나 하세요?

“대중 없지요. 밥 먹을 때 빼고 하루 종일 하기도 하고. 자다가 새벽에 깨면 잠이 잘 오지 않아요. 그때도 한번씩 들어가서 질문이 있으면 답해주고.”

전직 치과의사라는 경력 때문인지 할아버지의 답변들은 치아 관련 내용이 월등히 많다. 어릴 때부터 탁월했던 한자 능력을 발휘한 답변들도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할아버지의 답변은 번뜩이는 유머와 위트로 가득했습니다.

문 바보가 될 수 있는 방법? (저) 장난 아니에요. 너무 똑똑해서 고민이에요. 절대로 자랑하는 게 아니라 진짜 진심으로 고민입니다.

답 온달한테 가서 배우세요.(2018년 11월12일)

문 용돈 달라고 공손히 말하는 법?

답 엄마 아빠 이런 생각 해봤어요? 사랑하는 자녀가 돈 때문에 다른 애들한테 왕따당하는 꼴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2009년 8월9일)

문 이쁘게 사랑하는 법 좀 알려주세요. 여자분들, 전 남자인데 이쁘게 사랑하는 법 좀요. 여자친구에 대한 사랑은 남다른데 표현을 못하겠습니다.

답 이쁘게 사랑하려면 우선 미장원부터 가세요.(2017년 4월5일)

문 녹야 선생님 사랑이 도대체 뭘까요?

답 나는 사랑에도 종류가 많다는 것 외에는 잘 모릅니다.(2017년 3월4일)

돌아온 수호신

―언제 처음 인터넷을 시작하셨어요?

“환갑 즈음 치과 일을 그만두고 실업자가 되니 심심한데 뭐 할 게 있어야지. 실은 내가 그동안 여기저기 수필을 쓴 게 많아요. 그것들을 모아서 컴퓨터로 깨끗하게 다시 써서 정리할 생각이었어요. 사위가 사준 컴퓨터로 처음에는 타자 연습을 했지요. 수필들을 컴퓨터로 쳐서 인쇄해놓으니까 보기가 좋더라고. 그거 하다가 인터넷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았죠. 2002년인가부터 살살 인터넷을 한 거예요.”

―그럼 지식인 활동은요?

“인터넷을 하다 보니까 그런 게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았지요. 여기에 내가 아는 걸 답해야겠다 싶어서 시작한 거예요. 2004년쯤부터 했으니까 이제 14년 됐죠.”

―이제는 워낙 유명인이 되셔서 선생님 앞으로 질문이 많이 몰릴 것 같은데, 혹시 악플도 있던가요?

“많죠. 막 대놓고 욕을 해요. 이웃집 강아지 욕하듯 하는데, 그런 거는 다 지워버리죠. 많이 지웠어요.”

―상처를 받는다거나 하지는 않으세요?

“상처 받을 시기는 다 지나갔어요. 구역질이 나지만 싸우거나 욕하지는 않아요. 욕을 할 필요도 없어요. 어떤 사람들은 덤빌 줄이나 알지, 내가 하는 말은 알아듣지도 못해요.”

―선생님께 책 만들자는 제안은 없었나요?

“요즘 자꾸 교섭이 와요. 자서전 냅시다 하고. 출판사 두 군데에서 제안을 받았는데, 나 그렇게 유명인사 아니라고 거절했더니 그럼 얘기만 해달래요. 쓰는 건 자기네들이 쓰겠다고. 그런데 그러면 또 와전될 거 아니겠어요? 그게 싫어서 안 한다고 했어요.”

―그래도 살아오신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을 거 같은데요.

“이 일(지식인)을 하면서 외부와 소통을 하니까 그것만으로도 괜찮아요. 내가 거리에서 떠들 수도 없고 누구를 만날 수도 없잖아요. 집 안에 들어와서 혼자 쌀 씻고 밥하고 하다 보면 외로워 죽을 맛인데, 그래도 거기 통해서 사람들과 얘기하는 게 있으니까 좀 낫죠.”

2017년 2월과 2018년 10월 두차례 할아버지는 지식인 활동 중단을 암시하는 글을 올렸다. 사람들과 소통을 큰 낙으로 여기는 할아버지였지만 악화되는 건강을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시력이 더는 받쳐주지 않아 활동을 그만두려 했지만 아쉬워하는 팬들의 요청 때문에 활동을 재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나야 죽든 말든 자기 질문에 답해달라면서 사람들이 하도 아우성을 치니까.(웃음)”

―특별히 만나는 친구는 없으세요?

“초등학교 동창 여섯명이 서울에 살아요. 그 친구들을 두달에 한번씩 만나서 술 한잔 합니다.”

―만나면 주로 무슨 이야기 나누세요?

“옛날 어렸을 때 얘기지 뭐.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지겨워서 나가기도 싫어.(웃음) 경찰관 출신도 있고, 복덕방 출신도 있고, 각자 직업이 제각각이다 보니까 얘기가 모이지도 않아.”

―그 친구들도 선생님이 지식인 스타라는 사실을 아세요?

“얘기하지도 않았어요. 해도 몰라 걔네들은.”

―나중에라도 팬 미팅 한번 해보시는 건 어때요? 팬과의 만남!

“나 팬 관리 안 해요.”

―은연중에 목표로 삼고 계시죠? ‘절대신’?

“절대신은 못 될 거예요. 아직 멀었죠. 이제 마지막 단계인데 무리했다가 눈이 더 빨리 망가질 것 같아서. 이제 얼마 안 남았어. 내 생이 별로 안 남았어. 꼴까닥하는 그 순간까지만 하고 끝인 것이지.”

―선생님 블로그 보니까 ‘올해까지만 건강하고 싶다’는 글도 보이고, ‘빨리 죽어야겠다’는 글도 보이더라고요. 양쪽 다 마음이 이상해지는 글이었어요. 죽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가 스무살 때부터 죽음을 연구했어요. 아무래도 죽은 뒤 세상은 영 두렵고 겁이 나더라고. 근데 한 서른살 정도 되니까 차차 현실이 중요해져. 죽은 뒤 생각할 게 뭐 있나 했지요. 이제는 죽으나 사나 생과 사는 같다고 생각해요. 수학적으로 생각하자면, 둘 사이는 극과 극인데 어떻게 같냐 하겠지만 나이를 먹으면 그걸 알게 돼요.”

―죽고 나면 글을 읽을 수도 없고, 답을 달아줄 수도 없고, 아내도 못 만나실 텐데, 삶과 죽음이 어떻게 정말로 같아요?

“같아요. 같아져요. 아는 거나 모르는 거나 다 없어져버리니까 같아요.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갈 준비가 다 되어 있고. 예전에 우리 아버지가 ‘나 죽거든 아무렇게나 길바닥에 내버려둬도 좋고 이웃집 개가 뜯어먹어도 좋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내가 이만큼 살고 보니까 알겠어. 죽은 목숨이야 개가 뜯어 먹든 뭘 하든 상관이 없지. 자식들이 ‘부모 돌아가셨는데 이래도 되나’ 싶으니까 장례도 치르고 하는 거지 당사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거예요. 허허.”

“아직도 모르는 게 더 많아”

―얼마 전 블로그에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왜 성탄절을 더 신나게 보내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글을 쓰셨죠.(웃음) 선생님은 종교가 있으신가요?

“천주교예요. 세례도 받았는데 요즘은 ‘냉담자’가 돼서 잘 안 나가요. 아마 하느님이 계시다면 이런 나도 이해해주실 거다 정말로 생각해서.”

―그럼 성탄절은 어떻게 보내는 게 좋을까요?

“사실은 조용히 지내는 게 좋지요. 나도 젊었을 때는 명동을 휩쓸고 돌아다녔죠, 술 먹는다고.(웃음)”

―선생님은 신나게 노시고 지금 젊은 사람들한테는 놀지 말라고 하시는 거예요?(웃음)

“그냥 경험자로서….(웃음)”

―새해 소망이 있으시다면요?

“연말이라 이번 해를 정리해보고는 있는데, 내년 소망은 없어요. 내가 몇살까지 살지 모르는데 계획이 무슨 소용이에요. 소망이 있어봤자 이룰 수 있을지 자신도 없는데요. 그저 내 식대로 살다가 가는 거지. 손가락질 안 받는 길로만 가면 됩니다.”

―<한겨레>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착한 일을 많이 하면 좋아요. 착한 일을 많이 하면 나중에 다 회수가 돼. 죽으면 끝이지만 살아 있을 때는 어떻게든 돌아오더라고.(웃음) 나도 지금 팬들이 보내주는 관심들, 과자들 보면서 내가 했던 착한 일들이 이렇게 돌아오는 거구나 싶어서 기뻐요.”

―여전히 궁금한 게 많으시죠?

“그럼요. 아직도 내가 아는 거보다 모르는 게 더 많아요.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가 참 크지요. 이 재미는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못 느껴요. 그게 진짜 재미지.”

2018년 한국 사회는 더 이상 노인이 존중받는 나라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쪽으로 성실하게 나아가고 있다. 공공장소와 대중교통에서 호통을 치기 일쑤인 존재, 이것저것 불만만 가득하고 가르치기 좋아하는 꼰대 같은 존재, 도대체 말이 안 통하는 존재, 무시하고 외면해버리는 게 차라리 속 편한 존재가 돼버렸다. 노인을 지칭하는 혐오 언어들도 만들어져 젊은이들의 입을 타고 흐른다. ‘존경받는 어른’과 ‘꼰대 노인’ 사이엔 서로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거리가 생겼다. 조광현 할아버지는 그 간극을 좁히며 오늘도 ‘독수리 타법’으로 젊은이들과 만난다.

―‘지식인 할아버지’라고 불리는 건 마음에 드세요?

“사람들이 어떻게 부르든 관심 없어요. 미친 영감이라고 불러도 좋고 거지 영감이라고 불러도 좋고. 다 좋아요.”

2013년 8월11일 지식인에 글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왜 지식인에는 현명한 답을 원하는 질문이 없는가. 자기계발에 도움이 되는 글이 너무 없다. 연예인 누구 예쁘지 않냐는 둥 하나같이 애들 장난 같아서 답변 달아주는 재미가 없다.”

그 아래 조광현 할아버지가 이런 답변을 달았답니다.

“어떻게 그런 재미없는 질문만 보셨을까. 진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질문과 답들이 많이 있어요. 열심히 찾아보세요. 옛말에 부처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음미해볼 말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전했답니다.

십년이 넘도록 ‘그다운 것’을 찾아가며 세상의 궁금증에 답해온 녹야 할아버지. 2019년에도, 그리고 가능하다면 아주 오랫동안, 그 녹색 벌판을 계속 수호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burupd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