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17. 15:17

바다, ♥10살 연하 남편 자랑 "평생 잊지 못해"
- 2021.08.28

그룹 S.E.S 출신 가수 바다가 결혼 프러포즈 비하인드를 밝혔다.

27일 방송된 KBS 2TV 예능 프로그램 '신상출시 편스토랑'에서는 31번째 메뉴 개발 대결 주제 'K-푸드'가 진행된 가운데 기태영 집에 초대된 바다의 모습이 그려졌답니다.


이날 바다는 기태영의 집을 방문하며 양손 가득 빵을 들고 왔다. 바다의 남편은 배우 강소라, 유진도 즐겨 찾는다는 빵집을 운영하는 파티쉐. 무려 새벽 2시부터 만들었다는 빵들은 먹음직스러운 비주얼을 자랑했다.

정시아는 "남편이 10세 연하냐"며 깜짝 놀라며 "배우 박보검 닮았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에 기태영은 "진짜 호감형이고, 되게 미남이다. 여자들에게 인기 많은 스타일"이라고 증언했다.

특히 바다는 결혼 프러포즈를 스카이다이빙으로 받았다고 밝혀 놀라움을 자아냈다.

바다는 "결혼 전에 남자친구와 LA 여행을 같이 갔다. 함께 드라이브 하는 데 도착한 곳이 스카이다이빙 하는 곳이더라"라고 자세한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그는 "그런데 올라가는 내내 남자친구가 생각이 많아 보이더라"라며 "즐거운 기분을 만끽하긴커녕 갑자기 인사하고 먼저 출발했다. 얼마나 오기 어려운 기회인데 급하게 가버리니 '왜 그러지?' 싶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내려가고 있는데, 원래 착륙지 주변에 사람이 있으면 안 된다. 그런데 군인들이 있는 거다"라며 "잘못 날아온 줄 알고 걱정했는데, 알고 보니 신랑이 프러포즈하는 걸 알고 주변에서 도와준 것"이라고 설명했답니다.

VCR을 보던 출연진의 감탄이 이어진 가운데 바다는 "평생 잊지 못할 프러포즈를 받았다"고 남편에 대한 애정과 고마움을 드러냈다.

한편 바다는 지난 2017년 10살 연하의 비연예인 남성과 결혼, 지난해 9월 첫 딸을 품에 안았다.

- 바다 프로필 이력 경력

본명 이름은?
최성희 (崔成希, Choi Seong Hee)
출생
1980년 2월 28일[빠른생일] (42세)

고향 출생지
완도군 완도읍

신체 키 혈액형
164cm, 47kg, AB형
가족관계
아버지 최세월, 어머니 조복순
1남 2녀 중 막내
남편(1989년생)(2017년 결혼 ~ 현재)
딸(2020년 9월 7일생)

학력
도창초등학교 (졸업)
소래중학교 (졸업)
안양영화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과 / 졸업)
단국대학교 (연극영화학 / 학사)

종교
가톨릭 (세례명: 비비안나)
소속사
wave nine logo

- 출생 (1980)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소리꾼이었던 바다의 아버지는 낮에는 창을 하고 남는 시간에는 생계를 위해 경기도 부천시 근교에서 오리를 키우고 있었는데, 어려운 형편 때문에 바다를 낳을지 말지 고민이 많았지만 태몽을 꾸고 바다를 낳을 결심을 하게 됐다고 한다. 꿈속에서 열린 세계 구렁이 잡기 대회에서 바다 부모님이 한국 대표로 출전해 세계 각지의 사람들을 제치고 제일 큰 구렁이를 잡았는데, 상으로 받은 검은 종마에 부상으로 받은 황금안장을 얹자 말이 백마로 변하더니 어깨에서 하얀 날개가 돋아나와 하늘로 날아가버렸다고 한답니다. 

- 도창초등학교 (1986~1991)

바다가 태어난 뒤, 바다 아버지는 절친한 친구들과 함께 부산에서 큰 나이트 클럽을 운영하게 된다. 창으로는 돈벌이가 안 되고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하니 사업에 뛰어들게 된 것이다. 그때만 해도 기사가 딸린 차를 타고 다닐 정도로 부유하게 살았지만, 클럽을 운영하면서 술과 담배 등으로 건강이 안 좋아졌고, 결국 사업 실패와 건강 악화로 가세가 기울면서, 바다가 초등학교 1학년 되던 해 경기도 시흥시 도두머리로 이사를 가게 된다. 바다의 기억에 따르면, 웃풍이 심하고 비가 새는 허름한 집에서 살게 됐지만 집 밖에 나가면 마음껏 뛰어놀 대자연이 펼쳐져 있어서 매일 산과 들로 뛰어다니며 풍요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바다의 풍부한 감수성과 넉넉한 마음가짐은 자연과 함께한 어린 시절에서 비롯된 듯 하답니다.

비가 엄청 오는 날에도 산을 넘어서 학교에 다녔는데, 동창들의 증언에 따르면 "바다는 산을 넘어서 학교를 다니는데 하나도 힘들어하지 않고 오히려 산 타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았다"고 한다. 또, 겨울이 되면 산에 가서 직접 나무를 해와서 난로를 피웠는데, 다른 여자아이들은 힘들다며 나무를 조금밖에 못해왔지만 바다는 웬만한 남자아이들보다 더 많은 나무를 해왔다고 한답니다.

옆집에 꿩 5,000마리를 키우는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매일 30마리씩 죽어서 12마리를 묻어준 적이 있다고 한다. 가수 신해철이 리드보컬로 있었던 N.EX.T의 노래 <날아라 병아리>를 틀어놓고 꿩들을 묻으며 꿩들이 날아가는 꿈을 그렸다고. 특히 예수님의 12사도를 생각하며 '꼭 가수가 되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빌며 꿩들을 묻어줬다고 한다.

초등학교 2학년, "성희처럼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은 나와 보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에 처음으로 자신이 노래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MBC 《무한도전》논두렁 디바에서 알 수 있듯이 바다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넘치는 끼를 주체를 못할 만큼 흥이 넘치는 아이였는데,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지루해 할 때마다 교실 앞으로 나가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부터 시작해서 옷걸이 춤, 개그맨 흉내 등 원맨쇼를 했다고 한다. 당시 최고 인기였던 〈회장님 회장님〉의 딸랑딸랑과 〈네로 25시〉의 최양락 흉내를 비롯해 순악질 여사 흉내도 똑같이 냈는데, 늘 까만 테이프를 가지고 다니면서 일자눈썹을 붙이고 남자애들을 바꿔가며 앉혀놓고 "음매 기 죽어~, 음매 기 살어~"를 연발했다고 한다. 이런 까닭에 바다가 가요계의 요정으로 데뷔하자 동창들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후문이랍니다.

당시 전교에 반이 2개밖에 없어서 체육대회를 하면 경쟁이 치열했는데, 이긴 반이 진 반 애들한테 약을 올려서 큰 사건으로 번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중 바다가 사건의 발단이 된 일이 있었다. 처음에는 서로 말싸움으로 놀리다가 바다가 욱한 마음에 먹고 있던 떡을 옆반 애한테 던지면서 순식간에 헬게이트가 열렸고, 과자랑 음료수, 실내화, 가방, 빗자루 등등 던질 수 있는 온갖 것들이 날아다녔다고 한다. 또, 한 번은 놀이터에서 뺑뺑이 경쟁이 붙은 적이 있는데, 바다는 "절대 지면 안 된다"면서 뺑뺑이를 돌려댄 바람에 상대편 여자애 1명이 기절해서 나가 떨어진 뒤에야 게임이 끝났다고 한답니다.

바다가 9살 때부터 바다 아버지의 건강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아예 일을 못할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결국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말에, 가족끼리 묏자리까지 보러다니게 된다. 죽음을 앞둔 바다 아버지는 물려줄 재산도 없고, 그저 "자식들이 알아서 살아갈 수 있도록 뭐라도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식들 중에 재능을 가장 많이 물려받은 막내딸에게 뱃심을 길러주기 위해 매일 아침 바다의 배를 밟고(…) 서있었다고 한다

다행히 아버지의 병세는 양약을 끊고 청정한 산과 들에서 나는 풀뿌리와 나물 위주로 식단을 바꾸면서 자연스럽게 낫게 됐다. 그야말로 기적이라고밖에 설명이 안 되는 상황. 치료비 때문에 집도 없어지고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오히려 아버지가 죽음을 눈앞에 둘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자 가족간의 사랑이 더 깊어졌고, 바다 어머니가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 식당에 다니면서 돈을 벌었지만 누구도 힘든 티를 내지 않고 식구들끼리 더 아끼고 챙겨주게 됐다고 한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바다네 가족은 성당에 딸려있는 조립식 건물에서 살았다. 치료비를 대느라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집을 얻을 상황이 아니었던 바다네 가족에게, 아버지의 병이 나을 때까지 공소 앞 정원을 관리하며 지내라고 마을에서 건물을 내어준 것이다. 죽음을 앞두고 모든 것을 포기했던 바다 아버지는 병이 조금씩 호전되면서 성당 관리 일을 맡게 됐고, 바다네 가족은 문을 열면 바로 성당을 바라보는 공간에 살면서 새벽에 미사 참례하러 오는 사람들을 위해 성당 문을 열어주고, 성모 마리아상을 닦고, 성당 청소를 하면서 지내게 된다. 이같은 성당에서의 삶은 훗날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에스메랄다 역을 연기할 때 큰 영감을 주게 된답니다.

바다는 성당에서 사는 7년 동안 매일 3시간씩 한겨울에도 속옷을 짜면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춤을 추고 노래 연습을 했다. 창, 가스펠, 가요 등 아는 장르는 전부 불렀는데, 특히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와 신승훈의 〈미소 속에 비친 그대〉를 부르며 비브라토 연습을 했고, 춤은 거울이 없으니까 근처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성당 벽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보면서 췄다

- 소래중학교 (1992~1994)

중학교 시절, 경기도 48개시의 학교 학생들이 출전한 웅변대회에 나가 1등을 했다. 당시만 해도 웅변은 돈 있는 사람들만 자식에게 시킬 수 있는 전유물로 여겨졌는데, 바다는 학원 한 번 다니지 않고 매일 같이 연습을 해서 1등을 차지했다. 바다 아버지에 따르면, 각 시에서 리무진을 타고 온 아이들을 제치고 우승 깃발을 받은 건 지금 생각해도 기적같은 일이라고.

중학교 시절 바다의 꿈은 '레크레이션을 지도하는 수녀'였다. 바다 아버지가 가톨릭 신앙에 귀의하면서 온 가족이 신앙 생활을 하게 됐고, 특히 바다 아버지는 바다를 '복덩이'라고 부르면서 수녀원에 보내고 싶어했다. 실제로 바다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3년 동안 수녀회 성소자(聖召者) 모임[17]에 다녔다. 여름방학마다 꽃동네, 천사의 집, 평화의 집을 찾아다니며 아기들을 돌보고, 환자들의 임종을 지켜보고, 할머니 할아버지 똥오줌도 다 받아냈다고. 하지만 안양예술고등학교에서 연극과 뮤지컬을 통해 재능을 발견하게 되면서, 수도자 말고 자신의 길이 따로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중학교 시절 한마음문화예술단 정식회원이 됐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1달에 1번씩 정기공연을 가졌는데, S.E.S. 5집 활동 당시에는 아버지를 따라 탑골공원에 가서 노래한 적도 있다.

중학교 3학년, 안양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과에 지원한다. 당시 안양예고는 연예인 지망생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어 경쟁률이 무척 높았는데, 바다가 지원한 해의 경쟁률은 무려 19:1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만 해도 돈이 없으면 예술고등학교를 다니기가 어렵다는 인식이 강했고, 촌동네에서 예고에 진학한다는 것은 연예인 기획사에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렵게 여겨졌기 때문에, 바다가 안양예고를 지원했을 때 다들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려운 형편이었음에도 뜻을 굽히고 싶지 않아 밤낮으로 연습해 결국 입학시험을 보게 된다.

입학시험에서 바다는 트로트, 가요,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On My Own〉, 창 각각 1곡씩을 불렀고, 연극 《백세개의 모놀로그》에 나오는 대사에 맞춰 자유 연기를 했다. 당시 바다를 면접했던 안양예고 임경완 교감은 바다에게 "아버지는 뭐하는 분이시냐"고 물어봤다. 보통 집안에 대해 묻는 이유는 실력이 아주 없거나 아주 뛰어나거나 둘 중 하나로, 실력이 없으면 돈으로 여기까지 온 건지, 왜 하려고 하는지를 묻는 거고, 실력이 뛰어나면 집안에 내력이 있는지 궁금해하는 것. 이에 바다는 "아버지가 지금은 편찮으시지만 예전에 창을 좀 하셨다"고 답했고, 이에 교감은 "들어오면 잘 할 거지? 열심히 다녀!"라며 그 자리에서 미리 대놓고 합격에 대한 확신을 줬다고 한답니다.

- 안양예술고등학교 (1995~1997)

합격생 68명 중 실기 1등으로 안양예고에 입학하게 된다. 동네에 플랜카드가 걸리고 이장님이 돼지까지 잡아줄 정도로 경사스런 분위기였지만, 유독 바다 아버지만 반대했다고 한다. 바다 아버지는 목소리가 낭랑하고 노래를 잘 불렀던 바다를 유독 예뻐했고, 바다가 예능 쪽으로 재능이 타고난 걸 알고 있었지만 가수가 되는 걸 100% 찬성한 건 아니었다. 재능을 타고났다고 해서 모두 가수가 되는 게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재능만으로는 안 될 뿐더러 죽도록 노력도 해야 하고 운도 따라줘야 한다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 더욱이 바다를 뒷받침할 수 있는 여건도 안 됐기 때문에, 바다도 바다의 언니처럼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하길 바랬다고 한다. 바다한테 대놓고 "먹고 살기 힘드니까 하지 말라"고 할 정도였는데, 나중에 밝히길 바다는 "예고 등록금이 그렇게 비싼지 몰랐다"고 한다.

바다가 예술고등학교에 가겠다고 한 그 다음날부터, 바다 아버지는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삿갓을 쓰고 밤무대를 다니며 민요를 불렀다. 당시 바다 아버지는 위와 폐에 구멍이 뚫린 상태였지만 3남매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야간 업소와 지방 행사장을 다닐 수밖에 없었고, 무대 위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진 적도 있다. 당시 바다 어머니는 약 달이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남편 몸도 성치 않은 상황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다른 사람의 약을 달여야만 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바다는 부모님의 걱정을 덜기 위해 학교 생활에 더욱 충실했다고 한다. 바다가 가수로 데뷔하고 난 뒤, 바다 아버지는 혹시나 가족사가 드러나게 되어 마음 고생을 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다. 하지만 오히려 바다는 "환경이 힘들었을 뿐이지 마음은 가난한 적이 없었는데, 가난이 뭐가 창피하냐"고 당차게 되묻기도 했답니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저녁을 못 먹어서 집에 딱 하나 남아있던 라면을 끓이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라면을 끓이는 걸로 착각하는 바람에 아버지께 라면을 양보했다고 한다. 라면을 못먹은 마음에 괜히 울쩍해서 집밖에 잠깐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려는데 마침 일터에 나가는 아버지가 '오늘은 진짜 나가기 싫다'고 혼잣말하는 걸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폭우가 쏟아지는 저녁에 일하러 나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아버지도 한 남자고,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폭풍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본인 때문에 밤업소를 다니는 아버지를 생각하니 상업고등학교로 옮겨 돈벌이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돈으론 가정형편이 나아질 리 없었고, 성인이 되면 아버지에게 힘이 될 수 있으니 그때까지 마음이 약해져선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그렇게 힘들게 돈을 번다는 사실이 자신을 일찍 철들게 한 것 같다고 한답니다.

고등학교 시절 늘 학비를 늦게 냈는데 지역 단체의 도움을 받아 학비를 마련한 적도 있고, 어떤 독지가로부터 후원을 받은 적도 있다고 한다. 학비를 끝까지 못 냈으면 세상을 보는 시각이 어두워졌을지도 모르지만, 성당에 다니는 어떤 분이 무기명으로 두 학기 등록금을 내주면서 그때 세상이 참 따뜻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바다는 학창 시절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항상 사회에 보답을 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두산 연강재단을 통해 결손가정 아이들을 돕는 등 후원활동과 봉사활동에 꾸준히 참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안양예술고등학교 시절, 공부는 1등을 못했지만 실기는 항상 1등이었다고 한다. 몸으로 연기하고 노래하는 것은 자신 있었기 때문에 재능으로 할 수 있는 건 모두 A+를 받았다고. 안양예고 학내 연극에 많이 출연했는데 주로 서사극이 많았다고 한다. 한 학기에 한 번씩 작품을 올렸는데, 세익스피어 4대 비극부터 한국 고전은 물론이고 《산불》 같은 근대의 작품까지 올렸다고 한다.[18] 매 작품마다 캐릭터 분석을 전투적으로 많이 했는데, 본인만의 방식으로 명작을 분석해보면 이야기가 선명하면서도 단조롭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예 나중에는 단편 희곡까지 썼다고 한다. 또한, 연출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바다가 연출한 작품으로는 악극 《울고 넘는 박달재》가 있다고 한다. 바다에 따르면, 연출은 단조로운 이야기 속의 무대 언어를 끄집어내는 과정에서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고 한다. 뮤지컬을 하면서 무대 연기 부분에 있서 나름대로 자신감을 갖는 이유는, 많은 것을 흡수하던 고교 시절 연극에 집중했던 시기를 거쳤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발로 중심을 잘 못잡는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 깊은 바다에 들어갔다가 모래가 들어가 한 쪽 귀가 안 좋은데, 그때 평형 감각에 문제가 생긴 듯.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하려면 평형감각이 필요한데 조금만 열정적으로 하다보면 몸이 자꾸 한쪽으로 치우쳐져서 중심을 잡기 위해 뱃심을 키웠다고 한답니다.

- 가수 준비 (1997)

고등학교 시절에는 연극배우가 꿈이었다. 많은 스승들이 바다의 재능을 인정해줬고, 연기에 소질이 있다고 말해줬기 때문. 그래서 연극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배우로 데뷔하면 학비를 바로 마련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에 선생님들의 조언에 따라 가수로 먼저 데뷔하게 된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김건모, 신승훈 등을 배출한 덕윤산업에서 오디션을 봤다. 당시 심사위원 중에는 연습생 신분이었던 가수 홍경민이 있었는데, 바다의 앳띠고 예쁘장한 얼굴만 보고 '또 연예인 되고 싶어 안달난 애가 온 줄 알았다'고 한다. 바다가 준비한 노래는 당시 유행하던 박미경의 노래. '노래도 못하는 것들이 높은 노래만 부르면 잘 부르는 줄 안다'고 속으로 혀를 찼는데, 바다의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목소리에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흔히 전문가들이 말하길 "아무리 천재라도 나이에서 오는 연륜은 넘을 수 없다"고 하지만 바다는 최소한 그 나이 또래에서는 최고 수준이었고, 발성, 음정, 박자에 음색과 테크닉까지 완벽할 뿐 아니라 노래와 끼, 긴장하지 않고 얘기하지 않는 말솜씨까지 충분한 자극제가 됐다고.

1996년 안양예고 연암제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머라이어 캐리의〈Hero〉를 부르다가 SM 캐스팅 디렉터 눈에 띄어 캐스팅된다.[19] 학교 측이 무대에 바다가 선다는 것을 SM 엔터테인먼트에 사전 귀띔해준 결과. 당시 SM에선 걸그룹 리드 보컬을 찾으며 예고 쪽을 알아봤는데, 안양예고 학생들이 끼가 많다는 얘길 듣고 "노래 잘하는 친구를 추천해달라"고 했던 모양. 원래는 SM이 아닌 다른 기획사에서 솔로 제의가 들어왔지만, 담임 뿐 아니라 교감과 교장 선생님 모두 "너는 뭐가 되어도 될 수 있다"며 발벗고 나서 여러 기획사를 소개시켜줬다고 한다. 그러다 SM에서 제의가 들어왔고 이수만이 "대학교 전액 장학금과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다 도와준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면서 SM과 계약을 맺게 된답니다.

SM 오디션에서 장혜진의 〈내게로〉를 불러 합격했다.[20] 당시 바다는 박자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자기도 모르고 발로 박자를 치면서 노래를 불렀는데, 노래가 끝나자 이수만이 말하길 "발라드를 부르면서 박자를 친 소녀는 바다가 처음"이라고 했다고. 바다는 "S.E.S. 활동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이수만 선생님이야말로 나를 진심으로 존중해준 훌륭한 아티스트인 거 같다"고 한다. S.E.S. 시절, 이수만에게 샤데이 앨범을 들고 가서 "이런 노래 부르고 싶다"고 했더니 바다를 보고 함박웃음을 짓더니 2집 앨범부터는 수록곡을 직접 고를 수 있게 해줬다고 한다. 아이돌이라고 무시하지 않고 가수로서 또 다른 교육을 해준 셈. 뉴욕에서 《Love》 뮤직비디오를 촬영할 당시, 해가 질 무렵 석양을 받으면서 촬영하고 있는 S.E.S.를 보며 '내가 다시 S.E.S. 같은 그룹은 못 만들 것 같다'는 말을 했다는 일화도 있다. 데뷔 15주년 팬미팅에서 바다가 말하길, "당시에는 그냥 한 얘기로 받아들였지만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시대적 배경이 주는 이미지와 신비로움 등 모든 것이 S.E.S.와 잘 어울린 것 같다"면서 "이후 수많은 여성그룹이 나왔지만 정말 S.E.S. 같은 그룹은 없었던 거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수만은 바다 콘서트 때마다 화환을 보내는 등 애정이 남다른 편이랍니다.

SM에서 1년 정도 트레이닝 기간을 가졌다. 6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 이수만이 '잠정적으로 너를 리드보컬로 정했으니, 함께 할 서브보컬을 찾아보자'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바다는 연습생 중 마음에 드는 연습생들도 있었고, 당시 한창 미국 3인조 여성그룹 TLC에 심취해있을 때라 3인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8개월이 되었을 무렵, 데뷔 짝짓기를 앞두고 "4인조로 가자"는 사장의 주장에 맞서 "3인조를 하고 싶다"고 강력하게 어필했다고 한다.[21] 사장은 이수만이 미리 바다에게 얘기한 사실을 모르고 "자꾸 이딴 식으로 굴 거면 빠지라"고 말했고, 이에 빡친 바다는 "S.E.S.에서 빠지겠다"고 선언한 뒤 연락을 다 끊고 잠수를 탔다고 한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이수만이 노발대발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나중에는 사장이 바다를 거의 모시고 가는 격이 됐답니다.

- 단국대학교 (1998)

평소 뮤지컬 쪽으로 장점이 많다고 생각한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지원한다. S.E.S. 데뷔 준비와 입시 준비를 함께 했기 때문에, 밤 10시가 넘는 시간까지 연습을 하다 숙소로 돌아와서 수능 공부를 했다. 책상 앞에만 앉으면 늘 졸기 일쑤였지만 유진과 슈가 엄마처럼 챙겨주던 게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한다. 자기들도 피곤할텐데 곧바로 쉬지 않고 수험생 엄마들이 늦은 밤까지 간식을 챙겨주는 것처럼 돌아가면서 과일을 깎아주고 응원을 해주던 게 정말 고마웠다고.

대학교 실기 시험에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Think of me〉를 불렀다. 2009년 MBC 《공감토크쇼 놀러와》에서 밝히길, 당시 필기 성적이 안 좋아서 실기 시험이 절박한 상황이었는데 영어에 대한 지식이 없고 마음만 급하던 상황에서 유진이 곡의 발음과 해석을 직접 적어주는 등 도움을 줘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이같은 노력에 힘입어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도 실기점수 1등으로 입학하게 된다. 이로써 바다는 데뷔와 동시에 S.E.S.에 들어가기 전 간절히 바라던 꿈 3가지[22]를 모두 이루게 된다.

훗날 S.E.S. 활동을 중단하고 솔로로 활동하면서 계약금을 6억 원 정도 받았다 한다. 아버지에게 좋은 집을 사라고 드렸다는데 작은 집을 전세로 계약하고 나머지는 좋은 일에 쓰셨다고. 어차피 드리기로 마음먹었던 돈임에도 딸의 마음을 외면한 것 같아 섭섭했지만 이내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한다.

-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금발이 너무해 등에 출연했고 뮤지컬 배우로 신인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08년 동명의 영화를 각색한 뮤지컬 미녀는 괴로워의 주인공 강한나/제니로 캐스팅되며 엄청난 흥행을 몰고 왔으며 2009년 더뮤지컬어워드에서 이 작품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한다. 그녀가 부른 뮤지컬 타이틀곡 'Maria' 는 시원시원한 가창력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덕분에 2011년 2기 공연시에 여주인공으로 다시 캐스팅되는 행운을 안게 된다.

그녀가 여주인공으로 초연하여 우수한 흥행을 거뒀던 뮤지컬 미녀는 괴로워의 2011년에 시작된 2기 공연에서 주인공인 '강한별/제니' 역에 배우로 다시 캐스팅되었다. 박규리, 뮤지컬 배우 전혜선과 함께 트리플 캐스팅. 이외에 노트르담 드 파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23], 브로드웨이 42번가, 스칼렛 핌퍼넬, 페퍼민트, 텔미 온어 선데이, 카르멘 등에 출연하였다. 다만 최근에는 뮤지컬 활동이 뜸해진 편이다. 2018년에 출연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가장 최근 출연작.

가수 바다, '불후의 명곡' 조용필 특집 역대급 무대 예고
- 2018.04.27

가수 바다가 KBS2 <불후의 명곡> ‘조용필 특집’을 통해 2년여만에 ‘불후의 디바’로 귀환했답니다.

바다는 오는 28일 방송되는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 조용필 특집 2부에서 특유의 카리스마 넘치는 퍼포먼스와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역대 급 무대를 예고했다.

바다는 ‘전설 조용필’의 명곡 중 ‘꿈’을 선곡해 완벽한 무대를 선보인다. 특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카르멘’, ‘노트르담 드 파리’, ‘미녀는 괴로워’ 등 수 많은 뮤지컬에 출연하며 명불허전의 가창력으로 대한민국 최고 디바의 자존심을 지켜 온 바다는 이번 무대에서 그 어느 때보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한 퍼포먼스를 준비해 현장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는 후문이랍니다.

‘불후의 명곡’은 지난 2011년 첫 방송 이후 지난 8년간 조용필을 전설로 모시기 위해 꾸준히 러브콜을 보낸 결과 조용필의 화답을 얻어 화제를 모았다. 특히 조용필은 음악 인생 50년 동안 사랑해주신 국민과 팬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불후의 명곡’ 출연을 결심했고, 제작진 역시 이전과는 다른 특별한 구성으로 방송을 준비했답니다.

바다는 최근 뮤지컬 무대로의 컴백을 발표하는 등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가왕 조용필’의 출연 소식을 전해 듣고 2년여만에 불후의 명곡 출연을 결정지었다.

Posted by burupdant